April 27, 2011

내일은 내일의 해

 당연한 말이 남극엔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무섭도록 일출 시간이 늦어지는데, 이 추세라면 6월엔 해가 영영 뜨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특히 오늘 겪었던 아침 7시의 하늘은 이상할 만큼 형형히 검었고, 밤새 잡빛을 빨아들인 설원은 마치 개의 흰자위처럼 번득거렸다. 세계는 본디 흑백 아니었을지? 그래서 우리에게 이분법적 사고가 그토록 잘 어울리는건 아닌지.

 'Before Sunset'에서 Julie Delpy가 부른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I have no bitterness.

April 25, 2011

현상과 목적


 의학의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흔한 방식은 원시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을 직선적 발전의 과정으로 보는 이른바 휘그적(Whiggish) 해석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건강과 수명은 지속적으로 증진ㆍ연장돼 왔으며 그 과정에는 의학의 발전이 절대적 구실을 했던 것으로 된다. 고대로부터 지속적으로 길어진 평균수명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고고병리학적 연구들에 의하면 이 가설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컨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됐던 수렵과 채취를 기반으로 한 경제사회의 평균수명과 건강수준은 농경사회의 그것에 비해 우수했다는 증거들이 무척 많다고 한다.

 이런 증거들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해 볼 수도 있다. 곧, 의학은 인간의 생활방식과 자연의 조화가 깨진 상태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인위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렵ㆍ채취 사회의 건강이 자연적 ‘현상’이었다면 문명 이후의 건강은 의학이라는 인위적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이 된다. 여기서 그 목적을 설명하는 의학적 이론이 나타나고 그 이론에 따른 생활방식이 ‘처방’된다. 건강의 방향이 ‘자연적 조화의 회복’으로부터 ‘인위적 목적의 달성’이라는 쪽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르네 듀보는, 모순처럼 보이는 건강의 두 방향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와 위생과 보살핌의 여신 히게이아(Hygeia)에 의탁해 설명한다. 전자가 목적으로서의 건강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문명 이전에 누리던 조화로운 상태의 회복을 도와준다.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전자는 이미 발생된 질병을 다루는 치료의학을 대표하며 후자는 발병 이전의 섭생을 관리하는 예방의학과 보건학을 상징한다. 후자가 질병의 원인을 인간의 활동과 환경에서 찾는 반면 전자는 우리의 생물학적 실체인 몸속에서 찾는 셈이다. (하략) - 강신익

April 24, 2011

외면일기(Journal Extime)

 나무들이 서로를 미워하며 저마다 공간과 빛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숲 속에 들어가면 강제수용소 같은 증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April 22, 2011

 드디어 대망(大望)을 독파하였다. 역사소설을 읽으며 가장 주의하여야 할 점은, 역설적이게도 결코 끝까지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존 인물이기에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주인공의 성공 시점에서 독서를 그만두어야 한다. 꿈과 희망, 야망과 영화를 간접 체험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써 사용되어야 할 역사소설을 끝까지 '읽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회한과 허무. 예전엔 참 고루하게 생각되었던 '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와 같은 표현이 결국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였다는 사실은 깨닫지 않는 것이 좋다.

어느 개의 죽음 (Sur La Mort D'un Chien)

 최근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에게 푹 빠져 있다.


53 / 자연의 맹목의 법칙이 갖는 한계

 "신은 그의 비할 바 없는 지성으로 자연의 법칙을 만들었읍니다. 그에게 끊임없이 기적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위를 취소하게 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제가 오늘 나에게 한 말이다.
 "알겠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연의 맹목의 법칙에 매어 있다면 전능하고 선한 것이 대체 무슨 소용에 닿는 것입니까? 아스클레피오스 Asclepios 에게서 기적적인 치유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그러나 그도 에피도로스 Epidauros 에서 그런 치유를 베푼 것 같긴 합니다만) 신이나 모세에게서도 기대할 수 없을까요?" -p98


 누런 책 귀퉁이가 접힌 자국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사반세기 전에 누군가가 읽었던 흔적을 더듬으며 그는 이 곳에서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역자 김정란의 글 일부도 옮긴다.

 사색의 끝은 분명히 신(神)일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신은 현현하지 않는다. 찾는 자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명상 자체가 이미 그 여행의 모든 의미인 것을. -viii

April 11, 2011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April 10, 2011

 A whale at sunset.
 조리개를 최대한 조인 상태에서 노출을 오래 주면 사진엔 고정된 진실만 남는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펑소 배경에 불과하였던 장면들만 희뿌옇게, 그러나 묵직하게 떠오른다.

 실눈으로 수평선을 계속 바라보았더니 어느 순간 하늘과 바다, 해안이 rothko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the hardest way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왕이었던 인간의 말이다.
 '이슬 속의 또 이슬, 꿈 속의 또 꿈', 다이코였던 인간의 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손 안 가득 떡을 쥐고도 더 맛있는 것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욕망의 응집체였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그 과정 중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현하며 행복을 느낀다 생각했다. 목표이자 꿈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질깃한 명욕에 감겨있을 땐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어려웠다. 난 그것을 해야, 그것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뿐이야! 자아 실현이야! 이 말들로 모든 행동이 합리화되었던 시절이었다. 애초 재욕은 없었으나, 명욕이 깡패였다.

 지난 기간 반복된 행위의 업보가 쌓인 결과 지구 끝까지 와서야 '행복'이라는 흔해 빠진, 촌스럽기조차 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전 언급하였던 욕망의 정제를 위하여 두 가지 목록을 작성해보았다. 

 첫 째,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말할 수 없는 노력을 전제로) 하고 싶으며 할 수 있는 일. 크게는 학업과 취직으로 갈라졌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유학인지 아닌지, 의학인지 아닌지, 기관인지 아닌지, 병원인지 아닌지. 십여 개 정도로 분류되는 나의 (선택 가능하다 믿는) 미래는 하나같이 화려하고, 진취적이며, 훌륭하다. 예술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를 뿐 아니라 (내 기준에서) 유망하기까지 하다. 

 둘 째, 원하는 것. 자작나무 숲, 눈, 책. 사랑과 고양이. 싱거운 저녁식사. 끝.
 이 6가지를 위해서라면 자극적인 취미들도, 여행도, 그리고 육체적 안락함도 포기할 수 있다.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지구의 발전도, 인류의 성취도 관심사가 아니다.

 목록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실소가 나온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인다. 준비하며 딱 6년만 '돈' 번 후 지름길로 가야겠다. 바로 떠나야겠다. 언제나 지름길은 고난의 길. 가장 어려워 돌아가게 만드는 길. 이것은 행복과 속살로 마주 앉은 속물 의사의 고백.

 이래서 결혼 하겠나..

holy holidays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주말'이다.

태동

 생일이 지났다. 이틀에 걸친 파티가 있었고 이런 저런 선물도 받았다. 그 중 가장 감동이었던 것은 사진 슬라이드였다. 남극을 향한 여정부터 현재까지의 내 사진을 모아 보여주었는데,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스스로 얼마나 변하였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인에겐 외관의 변화가 보였을 것이고, 나 자신에겐 내면의 변화가 무섭게 들여다보였다.
 이 곳은 내게 제 2의 자궁. 13개월 잉태되어 마침내 세상으로 나오는 날, 그 날이 내겐 또 하나의 생일이리라.

April 5, 2011

새벽의 풍경

 2011년 4월 3일 일요일과 4월 4일 월요일의 경계에서.



 해안에 물개가 올라와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머리를 흔들며 눈 위를 뒹굴었다. 파도 소리를 딛고 선 춤이었고, falla의 danza ritual del fuego가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남극은 모노톤. 하얗거나, 조금 하얗거나.

April 1, 2011

3

 쇠락한 신전을 떠올리며 걷는다. 눈은 가혹하고, 그만큼 외설적이다. 더듬으려 앞으로 뻗은 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뒤를 돌아본다. 발자국이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이 곳에 그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등대가 필요한 땅이군.

 목소리조차 하얗다.

blizzard

천장 빽빽히 매달린 밀가루 포대가 일시에 터지는 상상, 그 가루에 온 몸 뒤덮혀 내가 지워지는 상상. 현실은 가루가 수평으로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끝이 없다는 것. 끝도 없다는 것.
집에 전화하면 언제나 심바 이야기. 10분 전화하면 7분은 심바 이야기.
듣고 또 들어도 즐거운 심바 이야기. 슬플 때도 듣고 싶은  심바 이야기.
'윤미네 집' 삼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