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 2016

해남 가는 길. 전북 부안을 지난다. 들판은 푸르고 두루미가 난다. 장마와 폭염 사이 어디쯤에 흩어진 구름. 무의미한 풍경과 무의미한 여행.
2012년에 미황사에 머무른 적이 있다. 절, 참선, 산책과 차담. 뒷산에 오르면 해 지는 바다가 용암처럼 보였다. 바쁜 척 잊고 살다가도 취한 날이면 당시 냄새와 소리가 떠올랐다. 문신같은 기억들이 있지 않나. 첫사랑은 손가락에, 그의 죽음은 무릎에... 4년전 그때의 며칠은 내 배꼽 바로 밑 어딘가에 새겨졌나보다.

대형 병원의 교수가 되어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며 사는 것도 가치있는 인생일 것이다. 존경받으며, 가족과 함께 풍요롭게 나이드는 삶.

십 년 전 나는 지금쯤이면 내가 수미산같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렇게 장대비 속 하루살이처럼 흔들릴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어야지. 스님께 묻고 내게 묻고 숲에서 묻고 버스에서 묻고.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다시 서울로 올라온 후엔 절대 고민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