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7, 2013

last chance to see

난 일본인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럼 이 건물은 원래 것이 아닌가요?"
"아니, 맞아요. 원래 것이고말고요."
가이드는 내 질문에 꽤 놀라며 대답했다.
"하지만 타버렸다면서요?"
"맞아요."
"두 번이나요."
"여러 번이죠."
"그리고 새로 지었다고요?"
"네. 금각사는 소중한 역사적 건물이죠."
"완전히 새로운 재료로 지었고요."
"당연하죠. 다 타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예전과 같은 건물이라는 건가요?"
"이건 늘 같은 건물이죠."
사실 가이드의 시각이 좀 뜻밖의 전제에서 나왔다 뿐이지 훨씬 더 이성적 관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건물의 핵심이자 불변인 요소는 개념과 의도, 설계이다. 건물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원래 건물을 지은 이의 의도이다. 처음 지었을 때 들어간 목재는 썩게 마련이고 필요하면 교체된다. 지을 당시에 썼던 재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과거에 대한 감상적인 추억에 매달리는 것으로 건물 자체는 보지 못하는 행위이다. -p244

January 15, 2013

서리

 .. 현재하고 있는 과거는 단순한 과거라고 할 수 없었다. 현재를 마구 휘저으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과거의 권력, 과거를 이길 수 있는 현재란 매우 드문 것이다. 그 과거가 황폐해져 있다면 그럴수록 더욱 이기기가 힘든 것이다. .. -p25

 .. 존재는 어떤 점에서 시간, 혹은 순서의 문제인지 모른다. 앞선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앞섰느냐는 건 물을 필요도 없고, 세계를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그곳에 존재한 모든 것들(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현상이든, 무엇이든)은 그에게 그곳을 이루는 요소들, 그곳의 일부로 인식된다. 그보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시 그곳을 형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것이다. 전자에게 모든 후자들은 덧붙여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밀 아자르 식으로 말하면,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이다'. 반면에 후자에게 모든 전자들은 세계를 이루는 존재, 곧 세계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바꿀 수 없고 참견할 수 없다. 다만 참여하거나 아주 드물게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정황 자체를 거부해야 하는 일이어서 보통 사람이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대개의 경우 '나'에 앞서 '나의 삶의 정황'이 존재한다. 내가 나의 정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정황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세계는 나에 앞서 이미 이루어져 있다. 세계는 존재에 선행한다. .. -p29

 .. '너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만일 날개를 가지고 있다면.' 이라는 문장과 이 구조는 같다. 통째로 주어진 무한한 자유는 그러나 따라붙은 조건문의 제한에 의해 무의미해진다. 유사하지만 더 근본적이고 명쾌한 전언이 러시아의 문호에 의해 이미 말해졌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가운데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이 말을 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신의 존재는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대자유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대전제에 의해 곧바로 회수된다.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