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8, 2022

조롱의 인플레이션

  삶의 목표로서 명예라는 가치가 지워지고 그 자리에 행복이 들어서면서 생긴 첫 번째 현상은, 일상적인 모욕 문화다. 론 E. 하워드가 썼듯이, 문명인은 야만인보다 무례한 말을 더 쉽게 한다. 그런다고 머리통이 박살날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상대의 결투 신청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 조롱과 모욕에 대한 공적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약하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도 제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모욕을 당했을 때 이것을 법정으로 가져가기보다는 다른 말로 받아치는 것이 권장되는데, 이로 인해 조롱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것이 우리가 모멸과 굴욕이 가득한 사회에서 살게 된 한 가지 이유다. -p171

September 7, 2022

저만치

  ㅡ공경하는 주교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말을 잃어버려서 죄의 내용을 사제에게 전할 수 없고, 사제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죄를 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요한 주교는 닷새 후에 회신했다.
  ㅡ고백하는 자의 간절함에 따라서, 사하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한다는 것은 이미 저지른 죄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그 죄업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일 것입니다.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손수녀님의 죄를 사하여주십시오. .. -p245

글을 다시

 글을 다시 써보려 한다. 18년에도 같은 생각을 하였지만, 이후 실행에 옮기기까지 4년이 더 걸렸다. 잘 쓰려 하니 써지지 않았다. 누가 볼까 염려되었고, 내 어린 마음을 남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앞으론 단상과 잠꼬대를 가리지 않고 남기겠다. 부족한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