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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1, 2024

모든 것의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키가 자라고
길어진 목으로 출근을 하고
서서 낮잠을 자고 저녁에는
해 지는 강변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p110

September 28, 2022

조롱의 인플레이션

  삶의 목표로서 명예라는 가치가 지워지고 그 자리에 행복이 들어서면서 생긴 첫 번째 현상은, 일상적인 모욕 문화다. 론 E. 하워드가 썼듯이, 문명인은 야만인보다 무례한 말을 더 쉽게 한다. 그런다고 머리통이 박살날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상대의 결투 신청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 조롱과 모욕에 대한 공적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약하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도 제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모욕을 당했을 때 이것을 법정으로 가져가기보다는 다른 말로 받아치는 것이 권장되는데, 이로 인해 조롱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것이 우리가 모멸과 굴욕이 가득한 사회에서 살게 된 한 가지 이유다. -p171

September 7, 2022

저만치

  ㅡ공경하는 주교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말을 잃어버려서 죄의 내용을 사제에게 전할 수 없고, 사제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죄를 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요한 주교는 닷새 후에 회신했다.
  ㅡ고백하는 자의 간절함에 따라서, 사하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한다는 것은 이미 저지른 죄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그 죄업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일 것입니다.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손수녀님의 죄를 사하여주십시오. .. -p245

September 19, 2017

유배된 시인
- 신현림


괴롭고도 큰 나이구나 서른셋
슬픔으로 슬픔을 해탈할 나이 서른셋
서른세 번의 봄이 와도
몸은 시베리아일 수 있느냐

물항아리에 잠긴 세상과 내 얼굴을 꺼내 읽고
그것이 한다발 시의 심장으로 피게
나는 긴 밤으로 유배돼왔다.

일생은 가슴에 횃불 하나 심어
순교하듯 일하고
사랑하는 이의 몸 속에 가을 무덤을 파는 것
가라앉는 밤바다에
온몸으로 저무는 것이다

나는 고된 노동 끝에 떠오른
만월 같은 밥으로 언 몸을 밝히고
사람을 그리워하기 위해 사람으로부터 떠나며
세계를 끌어안기 위해
강철 밤바다에 창을 뚫는다

목숨을 끊고 싶도록 쓸쓸한 밤에
꿈 속에서 뛰어나오는 야생의 아이들은
폐허에서 죽은 자들을 불러 노래부른다

February 10, 2013

智慧

이제 그는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현명하고 긍지에 차 있었던 시선이 아니었다. 그 대신 한결 온화하고, 한결 호기심과 관심을 가진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평범한 부류의 여행자들을 건네 줄 때나 소인들, 상인들, 무사들, 여자들을 건네 줄 때마다,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생소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고와 분별에 의해서가 아니고 오로지 충동과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과 견해를 같이 하였으며 그들과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들의 허영심, 그들의 탐욕, 그들의 유치함이 그렇게 우스꽝스럽지가 않고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고, 사랑하게 되었고, 심지어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 외아들에 대해 우쭐하는 아버지의 어리석고 맹목적인 자만, 젊고 허영심에 가득 찬 여인이 치장을 하고 남자의 눈을 끌려는 분수 없는 맹목적인 노력, 이같은 모든 충동, 이같은 모든 유치함, 이같은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러면서도 무섭게 강렬하며 힘차게 살아 나가려는 충동과 탐욕도 지금의 싯달타에게는 이미 어린애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들이 그것들로 인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그것들로 인하여 무한한 것을 이룩해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 인간들의 맹목적인 충실 속에는, 그들의 맹목적인 강인함과 집요함 속에는 사랑스럽고 감탄할 만한 요소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결여된 것이 없었다. 사고하는 지자(智者)가 그들보다 나은 점이란 단 한 가지, 의식하고 있다는 것, 모든 생의 단일성을 의식하여 사유한다는 것뿐, 그밖의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p154

January 17, 2013

last chance to see

난 일본인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럼 이 건물은 원래 것이 아닌가요?"
"아니, 맞아요. 원래 것이고말고요."
가이드는 내 질문에 꽤 놀라며 대답했다.
"하지만 타버렸다면서요?"
"맞아요."
"두 번이나요."
"여러 번이죠."
"그리고 새로 지었다고요?"
"네. 금각사는 소중한 역사적 건물이죠."
"완전히 새로운 재료로 지었고요."
"당연하죠. 다 타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예전과 같은 건물이라는 건가요?"
"이건 늘 같은 건물이죠."
사실 가이드의 시각이 좀 뜻밖의 전제에서 나왔다 뿐이지 훨씬 더 이성적 관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건물의 핵심이자 불변인 요소는 개념과 의도, 설계이다. 건물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원래 건물을 지은 이의 의도이다. 처음 지었을 때 들어간 목재는 썩게 마련이고 필요하면 교체된다. 지을 당시에 썼던 재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과거에 대한 감상적인 추억에 매달리는 것으로 건물 자체는 보지 못하는 행위이다. -p244

January 15, 2013

서리

 .. 현재하고 있는 과거는 단순한 과거라고 할 수 없었다. 현재를 마구 휘저으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과거의 권력, 과거를 이길 수 있는 현재란 매우 드문 것이다. 그 과거가 황폐해져 있다면 그럴수록 더욱 이기기가 힘든 것이다. .. -p25

 .. 존재는 어떤 점에서 시간, 혹은 순서의 문제인지 모른다. 앞선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앞섰느냐는 건 물을 필요도 없고, 세계를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그곳에 존재한 모든 것들(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현상이든, 무엇이든)은 그에게 그곳을 이루는 요소들, 그곳의 일부로 인식된다. 그보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시 그곳을 형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것이다. 전자에게 모든 후자들은 덧붙여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밀 아자르 식으로 말하면,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이다'. 반면에 후자에게 모든 전자들은 세계를 이루는 존재, 곧 세계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바꿀 수 없고 참견할 수 없다. 다만 참여하거나 아주 드물게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정황 자체를 거부해야 하는 일이어서 보통 사람이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대개의 경우 '나'에 앞서 '나의 삶의 정황'이 존재한다. 내가 나의 정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정황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세계는 나에 앞서 이미 이루어져 있다. 세계는 존재에 선행한다. .. -p29

 .. '너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만일 날개를 가지고 있다면.' 이라는 문장과 이 구조는 같다. 통째로 주어진 무한한 자유는 그러나 따라붙은 조건문의 제한에 의해 무의미해진다. 유사하지만 더 근본적이고 명쾌한 전언이 러시아의 문호에 의해 이미 말해졌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가운데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이 말을 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신의 존재는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대자유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대전제에 의해 곧바로 회수된다. .. -p34

October 1, 2012

유배

.. 1411년 일본 왕이 조선 태종에게 큰 선물을 바쳤다. 당시 조선 땅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코끼리였다. 신기한 코끼리를 구경하며 놀리던 이우라는 관리가 그만 코끼리 발에 밟혀 목숨을 잃었다. '범인' 코끼리를 피고인 삼아 재판이 열렸다. 살인을 했으니 사형감이었지만 일본 왕의 선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내려진 벌은 귀양살이. 코끼리는 전라도의 한 섬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

August 23, 2012

timeless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 우리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또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상喪과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p19

June 9, 2012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성,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 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No'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Konnen의 긍정성은 당위Sollen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

  알랭 에랭베르Alain Ehrenberg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권위적 강제와 금지를 통해 인간에게 사회 계급과 성별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규율적 행위 조종의 모델이 만인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될 것, 자기 자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규범으로 대체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 우울한 자는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 .. 에랭베르에 따르면 우울증은 규율사회의 명령과 금지가 자기 책임과 자기 주도로 대체될 때 확산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알랭 에랭베르는 오늘날의 인간형을 니체의 주권적 인간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 하지만 정작 니체라면 대중의 현실이 되려고 하는 저 인간형을 가리켜 주권적 초인이 아니라 그저 노동만 하는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긍정성의 과잉 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 의미의 자아 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Schaffens- und Konnensmudigkeit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 -p29

March 8, 2012

Sebaldian

전설에 따르면 나의 수호성인은 다키아(고대에 다키아인이 살던 지역으로 현재 루마니아 영토다) 혹은 덴마크 출신의 왕자였는데, 빠리에서 프랑스 여왕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식 날 밤, 그는 지극한 무상의 감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봐, 오늘은 우리 몸이 이렇게 꾸며져 있지만, 내일이면 벌레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지.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벌써 도망 길에 오른 그는 남쪽 이딸리아로 순례를 떠나 거기서 은둔자의 삶을 살다가 이윽고 자신 안에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음을 느꼈다. ... 어쨌든 나의 수호성인은 나중에 레크니츠 강과 페그니츠 강 사이의 라이히스발트(뉘른베르크 근처의 숲지대)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고 병자들을 치유한 끝에 자신이 죽기 전에 남긴 뜻대로 두 마리의 충직한 황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지금도 그의 무덤이 있는 그곳으로 옮겨졌다. -p106

October 24, 2011

E. Lévinas in the movie 'Before Sunrise'



 '나는 그 어떤 것도 신을 통해서 정의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들 간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신이지, 그 역은 아니다. 내가 신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하고자 할 때, 그것은 언제나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나는 위대하고 전능한 존재의 현존(existence)으로부터 출발하지는 않는다. 신의 추상적인 관념은 인간적 상황을 명백하게 해줄 수 없는 관념이다. 반대로 인간적 상황이 신의 관념을 명백하게 해 준다.' -p129


October 8, 2011

1914년

 "예전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던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다리를 올려놓게 만든다네. 나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려는 걸세. 훗날 지금보다 더한 외로움을 참기보다 지금의 외로움을 참으려고 하네. 자유와 독립과 자아로 가득 찬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런 외로움을 맛볼 수밖에 없네." -p48

September 30, 2011

또 다른 무진시의 아포리즘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p27

September 29, 2011

 말을 못하기에 몰락한 자연은 애도한다. 하지만 이 문장을 뒤집어야 우리는 자연의 본질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자연은 슬프기에 말을 못하는 것이다. -p35

September 27, 2011

자격과 권리


 .. 우리 중 상당수는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자질을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행운을 누린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 관료사회에서는 상사와 무난히 잘 어울린다. 대중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화면을 잘 받으려 노력하고, 짧고 내용 없는 말을 잘 지어낸다. 소송하기 좋아하는 사회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거나,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능력을 키운다.
 우리 사회가 그런 것들에 가치를 두는 현상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p227

July 5, 2011

감히 닮고 싶은 그대, 러셀

'자유주의자의 10계명'

1. 어떤 것을 절대로 확신하지 말라.
2. 어떤 것을, 증거를 은폐하는 방법으로 처리해도 좋을만큼 가치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 증거는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니까.
3. 필히 성공할 것으로 판단되는 생각을 단념하지 말라.
4. 반대에 부딪힐 경우, 설사 반대자가 당신의 아내나 자식이라 하더라도, 권위가 아닌 논쟁으로 극복하도록 노력하라. 권위에 의존한 승리는 비현실적이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5. 다른 사람들의 권위를 존중하지 말라. 그 반대의 권위들이 항상 발견되기 마련이니까.
6. 유쾌하다고 생각되는 견해들을 억누르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말라. 그렇게 하면 그 견해들이 당신을 억누를 것이다.
7. 견해가 유별나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인정하고 있는 모든 견해들이 한 때는 유별나다는 취급을 받았으니까.
8. 수동적인 동의보다는 똑똑한 반대에서 더 큰 기쁨을 찾아라. 현명한 지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태도이며, 그렇게 할 때 똑똑한 반대에는 수동적인 동의보다 더 깊은 의미의 동의가 함축되어 있다.
9. 비록 진실 때문에 불편할지라도 철저하게 진실을 추구하라. 그것을 숨기려다 보면 더 불편해진다.
10. 바보의 낙원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절대로 부러워하지 말라. 오직 바보만이 그것을 행복으로 생각할테니까.
 숲을 두려워하는 사람, 자신의 고독과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The Journal', 1850.11.16, H.D.Thoreau

July 1, 2011

..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의 가장 나쁜 단점과 비열한 면모를 대개 우리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 때문에 드러내곤 하는 법이다. -p399

June 6, 2011

춤꾼

 퐁트벵에 의하면, 오늘의 모든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는 다 춤꾼들이요, 모든 춤꾼들이 또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춤꾼이 여느 정치가와 다른 것은 그가 권력이 아니라 명예를 갈구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 세상에 이런 저런 사회조직을 부과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그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자아를 빛내기 위해 무대를 차지하고자 한다.
 무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무대에서 몰아내야 한다. 이는 특별한 전투 기술을 전제로 한다. 춤꾼이 행하는 전투, 퐁트벵은 그것을 <도덕씨름>이라고 부른다. 춤꾼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누가 그보다 도덕적이라고(좀더 용기있고, 좀더 정직하고, 좀더 성실하고, 좀더 희생적이고, 좀더 진실하다고) 자처할 수 있는가? 그는 상대를 자기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상황에 처하게 할 갖은 기술을 다 쓴다. -p25

 벵상이 퐁트벵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당신이 베르크를 혐오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이고 우리도 당신 생각에 동의하고 있어요. 하지만, 비록 그가 멍청이라곤 해도, 그는 우리 역시 정당하다고 여기는 주장들을 내세웁니다. 아니면, 그의 허영심이 그런 주장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좋겠죠. 그래서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대중적 갈등에 개입하여, 어떤 가혹한 처사에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박해받는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당신이라고 어찌, 이 시대에, 춤꾼이 아닐 수 있거나 혹은 춤꾼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에 대해 신비의 인물 퐁트벵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춤꾼들을 공격하려 한 줄로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야. 나는 그들을 옹호한다네. 춤꾼들에게 혐오를 느끼고 그들을 비방하려 드는 자는 언제나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에 직면할 걸세. 그들의 정직성 말이네. 끊임없이 스스로를 대중에게 전시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춤꾼은 비난할 수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네. 그는 파우스트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천사와 계약을 맺은 거야. 그는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며 그 작업을 천사가 돕는다네. 왜냐하면, 잊지 말게, 춤은 예술이기 때문이야!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소재로 보려는 그 강박 관념 속에 춤꾼의 참 본질이 있어. 그는 도덕을 설교하는 게 아니라, 도덕을 춤춘다네! 그는 제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감격시키고 눈부시게 하려는 거라네! 그는 마치 조각가가 자신이 조각중인 조각상을 사랑하듯 제 삶을 사랑한다네」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