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4, 2013

배교

시를 낭송하는 목사를 보았다. 그것이 수단이었든 아니었든, 난 그가 잠시 좋았다.
이정록 시인의 '서시'였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그나저나 다니던 사람이 하루 가지 않는 것과 다니지 않던 사람이 하루 가는 것 중 무엇이 더?

March 19, 2013

길들여지면 화석

호랑이는 고양이과다
-최정례


고양이가 자라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미 열매 속에
교태스런 꽃잎과 사나운 가시를 감추었듯이
고양이 속에는 호랑이가 있다
작게 말아 구긴 꽃잎같이 오므린 빨간 혀 속에
현기증 나는 노란 눈알 속에

달빛은 충실하게 수세기를 흘러내렸을 것이고

고양이는 은빛 잠 속에서
이빨을 갈고 발톱을 뜯으며
짐승 속의 피와 야성을
쓰다듬고 쓰다듬었을 것이고

자기 본래의 어두운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처럼
고양이,
눈 속에 살구빛 호랑이 눈알을 굴리고 있다


곽효환 시인의 해석이 독하다.
"..순한 고양이의 노란 눈알에서 시인은 길들여지지 않은 살구빛 호랑이 눈알을 찾아내 묻고 있다. 너의 심연에는 호랑이가 있지 않느냐고. 이는 호랑이도 쓰다듬고 길들이면 고양이가 되는 고양잇과가 아니냐는 질문으로도 들린다. 우리가 그럴 것이다. 나의 깊은 곳에 일렁이는 무엇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꿈과 야망도 길들여지면 아득한 기억 저편에 화석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March 12, 2013

"내가 기껏 가르쳐 놨더니"라는 말이 듣기 좋았다.

오다

이런 밤에만 여기에 오는 건 문제가 있다.

이성복은 신작 제목인 '래여애반다라'의 뜻이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라고 했다. 난 그동안 모았던 모든 시집과 바꾸겠다는 각오로 이 시집을 -

래 > 여 > 애 .. > 라 가 순차적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더라. 래는 애였고, 여는 즉 반이었으며, 라는 다이고 래이며 반이었으니 즉 애더라. 누구보다도 시인이 그걸 더 잘 알더라. 나만 몰랐고 모르더라.

- 읽던 도중 이성복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그 여름 아닌 겨울의 끝을 선물로 받았다. 난 잘 몰랐던 척 놀랐다. (난 늘 모르는 척 놀란다. 역시 문제가 있다. 겸양을 가장한 은폐, 뿌리 깊은 자기방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March 4, 2013


할퀴는건지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