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7, 2011

June 25, 2011

June 15, 2011

흔연한 우연

 새벽, 신경숙을 읽다 놀랐다.
 소설 속에서 '침묵의 세계'를 읽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시선 돌려 바라본 내 책상 위에도 그 책 -얇고 검고 길들지 않은- 이 열려 있었다. 유명한 책도 아니고, 흔한 책도 아니다. 나 또한 최승자 역이 아니었다면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책. 도서실을 정리하다 우연히 바닥에서 발굴했던 그 책을 누군가가 나와 함께 읽고 있었다. 글 속에서, 가까운 듯 평행한 침묵의 세계 속에서.

어느 안부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네. 2008년 서울 K대학교병원으로 옮겨 가까이 있는 자네 생각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연락을 주니 무척 반갑구나. 특히 보람있는 장소를 지원하여 주어진 임무를 감당하니 얼마나 좋은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은혜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낄 줄 안다. 개인의 삶에서나 온 세상을 이끌어가는 섭리에서나... 시야를 넓게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의료인의 삶에 충성하는 영웅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미국 흉부외과학회에서도 시야를 크게 가지고 미국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후진들과 대화하면서 참 마음이 뿌듯했단다. 
동료들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자주 연락하자꾸나."

 교수님의 지도학생이었던 2년, 모두에게 물들며 누군가를 물들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June 6, 2011

참, 아라공과 체 게바라는 의학을 배웠다. 일전 언급했던 막스 피카르트와 루쉰도. 기회가 되면 의학을 배웠고, 내게 감흥을 주었던 사람들을 모두 정리해보고 싶다.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당통(Danton), 조레스(Jaurès),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레닌(Lenin), 그람시(Gramsci), 아라공(Aragon), 체 게바라(Che Guevara).

춤꾼

 퐁트벵에 의하면, 오늘의 모든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는 다 춤꾼들이요, 모든 춤꾼들이 또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춤꾼이 여느 정치가와 다른 것은 그가 권력이 아니라 명예를 갈구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 세상에 이런 저런 사회조직을 부과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그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자아를 빛내기 위해 무대를 차지하고자 한다.
 무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무대에서 몰아내야 한다. 이는 특별한 전투 기술을 전제로 한다. 춤꾼이 행하는 전투, 퐁트벵은 그것을 <도덕씨름>이라고 부른다. 춤꾼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누가 그보다 도덕적이라고(좀더 용기있고, 좀더 정직하고, 좀더 성실하고, 좀더 희생적이고, 좀더 진실하다고) 자처할 수 있는가? 그는 상대를 자기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상황에 처하게 할 갖은 기술을 다 쓴다. -p25

 벵상이 퐁트벵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당신이 베르크를 혐오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이고 우리도 당신 생각에 동의하고 있어요. 하지만, 비록 그가 멍청이라곤 해도, 그는 우리 역시 정당하다고 여기는 주장들을 내세웁니다. 아니면, 그의 허영심이 그런 주장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좋겠죠. 그래서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대중적 갈등에 개입하여, 어떤 가혹한 처사에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박해받는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당신이라고 어찌, 이 시대에, 춤꾼이 아닐 수 있거나 혹은 춤꾼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에 대해 신비의 인물 퐁트벵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춤꾼들을 공격하려 한 줄로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야. 나는 그들을 옹호한다네. 춤꾼들에게 혐오를 느끼고 그들을 비방하려 드는 자는 언제나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에 직면할 걸세. 그들의 정직성 말이네. 끊임없이 스스로를 대중에게 전시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춤꾼은 비난할 수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네. 그는 파우스트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천사와 계약을 맺은 거야. 그는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며 그 작업을 천사가 돕는다네. 왜냐하면, 잊지 말게, 춤은 예술이기 때문이야!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소재로 보려는 그 강박 관념 속에 춤꾼의 참 본질이 있어. 그는 도덕을 설교하는 게 아니라, 도덕을 춤춘다네! 그는 제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감격시키고 눈부시게 하려는 거라네! 그는 마치 조각가가 자신이 조각중인 조각상을 사랑하듯 제 삶을 사랑한다네」 -p29

June 5, 2011

 꿈의 형상들은 깨어 있을 적의 영혼 속의 형상들보다 더 강렬한 모양의 형상이고, 그 때문에 꿈의 형상들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더 한층 강렬하게 병존하며 ― 바로 거기서 대부분의 꿈들의 예언적 성격이 생긴다.
 정신분석학은 꿈의 본질적인 점을, 그 침묵하는 힘을 파괴하고 그것을 소란스런 분석의 격론에 내맡겨버린다. 꿈의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꿈의 침묵하는 세계를 소음으로 점령해버린다. -p93

June 4, 2011

6월의 모습

남극세종과학기지 뒤의 봉우리. 우리는 '설악봉'이라고 부른다.

최근 남극에선 해를 보기 어렵다.

파도가 언다.

June 3, 2011

不當趣所愛 亦莫有不愛
愛之不見憂 不愛見亦憂

사랑하는 사람 가지지 마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 法救, '法句經' 中 '愛好品 二'

June 2, 2011

무진과 창야


 루쉰(魯迅)의 여러 작품 중 '고향(故鄕)'이 제일 좋다. 조금 교조적이지만, 사변적이진 않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의 침묵의 세계(Die Welt Des Schweigens)를 읽었는데, 최승자씨의 번역이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침묵에 대하여 무엇인가 말로써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상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스러워 하는 것은 다만, 침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무(無)로서 이해할 때뿐이다. 그러나 침묵은 "존재"이며 하나의 실체이며, 그리고 말이란 그 어떤 실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 무목적적인 침묵은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인 것의 곁에 있다. .. 그 무목적성으로써 놀라게 만들고 목적 지향적인 것의 흐름을 중단시킨다. .. 그것은 사물들을 분열된 효용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현존재의 세계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사물들을 다시금 온전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사물들에게 성스러운 무효용성(無效用性)을 준다. 왜냐하면 침묵 자체가 무효용성, 성스러운 무효용성이기 때문이다.」

 김탁환, 김훈, 박범신을 읽었다. 오, 김훈! 김훈.
 실로 던적스러워 '작가의 말' 이외엔 한 문장도 옮길 수 없다.

 「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