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5, 2011

현상과 목적


 의학의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흔한 방식은 원시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을 직선적 발전의 과정으로 보는 이른바 휘그적(Whiggish) 해석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건강과 수명은 지속적으로 증진ㆍ연장돼 왔으며 그 과정에는 의학의 발전이 절대적 구실을 했던 것으로 된다. 고대로부터 지속적으로 길어진 평균수명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고고병리학적 연구들에 의하면 이 가설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컨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됐던 수렵과 채취를 기반으로 한 경제사회의 평균수명과 건강수준은 농경사회의 그것에 비해 우수했다는 증거들이 무척 많다고 한다.

 이런 증거들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해 볼 수도 있다. 곧, 의학은 인간의 생활방식과 자연의 조화가 깨진 상태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인위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렵ㆍ채취 사회의 건강이 자연적 ‘현상’이었다면 문명 이후의 건강은 의학이라는 인위적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이 된다. 여기서 그 목적을 설명하는 의학적 이론이 나타나고 그 이론에 따른 생활방식이 ‘처방’된다. 건강의 방향이 ‘자연적 조화의 회복’으로부터 ‘인위적 목적의 달성’이라는 쪽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르네 듀보는, 모순처럼 보이는 건강의 두 방향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와 위생과 보살핌의 여신 히게이아(Hygeia)에 의탁해 설명한다. 전자가 목적으로서의 건강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문명 이전에 누리던 조화로운 상태의 회복을 도와준다.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전자는 이미 발생된 질병을 다루는 치료의학을 대표하며 후자는 발병 이전의 섭생을 관리하는 예방의학과 보건학을 상징한다. 후자가 질병의 원인을 인간의 활동과 환경에서 찾는 반면 전자는 우리의 생물학적 실체인 몸속에서 찾는 셈이다. (하략) - 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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