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6, 2011

오스카 와일드
미시마 유키오
쥘 베른
체홉
키에르케고르
켄 키지
제임스 조이스
레이 브래드버리
데카르트
샘 셰퍼드

1

 라디에이터 사이로 물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낡고 더러운 커튼, 먼지 쌓인 책상, 방을 가로지르는 빨랫줄 사이로 잠글 수 없는 문이 놓여 있다. 녹슨 라디에이터 속 뜨거운 물이 그의 혈액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더듬어 신을 찾는다.

-오늘도 입김이 나.
-무슨 말이야?
-연락은?
-직접 가봐.

도피한지 몇 년이 지났다.

February 5, 2011

죄 사함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p399

취향과 증오의 신화

 내가 얼마나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가 하면, 누가 자기는 무어가 좋고 무어가 싫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으면 그것을 절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헬레나가 청결하고 환기가 잘된 레스토랑에서보다 이렇게 답답하고 지저분한 싸구려 식당에서 숨쉬기가 더 편하다고 생각하거나, 좋은 포도주보다 싸구려 술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선언이 내게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벌써 오래전에 유행이 지나긴 했으나 열광적인 혁명의 시절, <평범한 것>, <서민적인 것>, <단순한 것>, <시골 분위기가 나는 것>이면 모두 정신을 잃을 만큼 좋아하고 <세련됨>이나 <우아함> 같은 것은 덮어놓고 경멸했던 그 시절에 한창 꽃피웠던 그런 어떤 의식적인 취향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258

 어떤 사람들은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여, 우리는 개별자로서만 개개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타당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며, 사랑에 대한 그 말이 증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그러나 이 증오를 순수히 추상적인 원리들, 불의, 광신, 야만성에 집중시켜 보라! 아니면 당신이 인간의 원리 자체마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인류 전체를 한번 증오해 보라! 이런 증오는 너무나 초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인간은 이 분노의 힘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가라앉히고자 할 때 결국 분노를 한 개인에게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법이다. -p373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p396

시간의 해독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었다.) -p49

..내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 그것을 나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내밀하게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았던 시간, 일로 사랑으로 온갖 노력들로 탈바꿈된 그런 시간, 내가 하는 일들 뒤에 살그머니 숨은 채 얌전히 있어서 그저 무심코 받아들였던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옷을 다 벗고, 그 자체로, 자신 본래의 진짜 모습으로 내게 오고 있었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자신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게 만들어(이제 나는 순수한 시간, 순수하게 텅 빈 시간을 살고 있었으므로), 내가 단 한순간도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 무게를 느끼도록 하고 있었다.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시간의 한 양태라는 것을 잊은 채 멜로디를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때 시간을 듣게 된다. 시간 그 자체를. 나는 휴지(休止)를 살고 있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약정된 기호에 의해 명백하게 그 길이가 한정되어 있는) 휴지가 아니라 한정이 없는 휴지를. ..-p80

..나는 아주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비합리적인 미신이 내게 남아 있는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 이상의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묘한 믿음이 그런 것이다.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진실과 불가사의의 열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그것은 환상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다, 틀림없이 그럴 것 같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해독>해야만 하는 이런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다. -p234

just fjords


The Anti-cruise: No Bingo, No Karaoke, Just Fjords

Midnight Sun, Northern Lights: Hurtigruten Ships Carry Travelers, Fish Along Norway's Fjords

simulacre




나와 생각이 일치하(다고 생각되)는 사진가의 글을 보았다.
내가 펭귄 사진을 내켜 찍지 않는 이유. 하나의 유빙을 몇 시간이고 탐닉하는 이유.

빙하는 또 하나의 이데아.
 

사진가의 글 일부를 옮겨 기록한다. 전문: http://su.pr/2VPTKF

Ice: A Photo Essay
I know that everyone wants photos of penguins, but I thought that I’d drag out the process a little bit on this one.  Instead, here is a photo essay of Ice. Yes, you heard that right.  Sometimes inspiration in photography is drawn from subjects you might not expect, but the ice in Antarctica shows an amazing character.  Each iceberg, each glacier, and each floating sheet shows a different journey towards creation.  Like a finger print each piece of ice is different to the others as the powerful ocean carefully carves each and every section.  And like a child who sees shapes in the clouds, visitors to the Antarctic can’t help but spot ducks, whales, and cars in the ice.

이 사진가의 글 하나 더. How to Photograph Antarctica


하지만 결국 無로, 다시 無로. 너의 영원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