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5, 2011

시간의 해독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었다.) -p49

..내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 그것을 나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내밀하게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았던 시간, 일로 사랑으로 온갖 노력들로 탈바꿈된 그런 시간, 내가 하는 일들 뒤에 살그머니 숨은 채 얌전히 있어서 그저 무심코 받아들였던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옷을 다 벗고, 그 자체로, 자신 본래의 진짜 모습으로 내게 오고 있었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자신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게 만들어(이제 나는 순수한 시간, 순수하게 텅 빈 시간을 살고 있었으므로), 내가 단 한순간도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 무게를 느끼도록 하고 있었다.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시간의 한 양태라는 것을 잊은 채 멜로디를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때 시간을 듣게 된다. 시간 그 자체를. 나는 휴지(休止)를 살고 있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약정된 기호에 의해 명백하게 그 길이가 한정되어 있는) 휴지가 아니라 한정이 없는 휴지를. ..-p80

..나는 아주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비합리적인 미신이 내게 남아 있는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 이상의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묘한 믿음이 그런 것이다.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진실과 불가사의의 열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그것은 환상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다, 틀림없이 그럴 것 같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해독>해야만 하는 이런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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