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9, 2022

멀어져

내게 꿈과 목표란 무를 자르듯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목표였다. 할 수 있거나, 준비하면 할 수 있거나, 오랫동안 노력하면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생각했고 그런 것은 목표라 여겼다.

꿈은 높고 먼 것, 닿지 않는 것, 생각하면 아린 것.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갈수록 꿈이 는다. 목표가 준다. (어쩌면 꿈도 준다.) 목표가 꿈이 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난 그대로인데'라고 쓰려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다. 여전히 별이며 땅일 것인데, 그 사이의 내가 변한 것이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껍데기가 흩날린다. 알맹이가 있는진 모르겠다. 일상이다.


https://www.kimyoungwoong.com/2012/10/blog-post_17.html

10년 전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September 28, 2022

조롱의 인플레이션

  삶의 목표로서 명예라는 가치가 지워지고 그 자리에 행복이 들어서면서 생긴 첫 번째 현상은, 일상적인 모욕 문화다. 론 E. 하워드가 썼듯이, 문명인은 야만인보다 무례한 말을 더 쉽게 한다. 그런다고 머리통이 박살날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상대의 결투 신청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 조롱과 모욕에 대한 공적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약하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도 제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모욕을 당했을 때 이것을 법정으로 가져가기보다는 다른 말로 받아치는 것이 권장되는데, 이로 인해 조롱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것이 우리가 모멸과 굴욕이 가득한 사회에서 살게 된 한 가지 이유다. -p171

September 7, 2022

저만치

  ㅡ공경하는 주교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말을 잃어버려서 죄의 내용을 사제에게 전할 수 없고, 사제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죄를 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요한 주교는 닷새 후에 회신했다.
  ㅡ고백하는 자의 간절함에 따라서, 사하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한다는 것은 이미 저지른 죄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그 죄업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일 것입니다.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손수녀님의 죄를 사하여주십시오. .. -p245

글을 다시

 글을 다시 써보려 한다. 18년에도 같은 생각을 하였지만, 이후 실행에 옮기기까지 4년이 더 걸렸다. 잘 쓰려 하니 써지지 않았다. 누가 볼까 염려되었고, 내 어린 마음을 남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앞으론 단상과 잠꼬대를 가리지 않고 남기겠다. 부족한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September 19, 2017

유배된 시인
- 신현림


괴롭고도 큰 나이구나 서른셋
슬픔으로 슬픔을 해탈할 나이 서른셋
서른세 번의 봄이 와도
몸은 시베리아일 수 있느냐

물항아리에 잠긴 세상과 내 얼굴을 꺼내 읽고
그것이 한다발 시의 심장으로 피게
나는 긴 밤으로 유배돼왔다.

일생은 가슴에 횃불 하나 심어
순교하듯 일하고
사랑하는 이의 몸 속에 가을 무덤을 파는 것
가라앉는 밤바다에
온몸으로 저무는 것이다

나는 고된 노동 끝에 떠오른
만월 같은 밥으로 언 몸을 밝히고
사람을 그리워하기 위해 사람으로부터 떠나며
세계를 끌어안기 위해
강철 밤바다에 창을 뚫는다

목숨을 끊고 싶도록 쓸쓸한 밤에
꿈 속에서 뛰어나오는 야생의 아이들은
폐허에서 죽은 자들을 불러 노래부른다

선택

좌충우돌 힘든 길만 골라 걷다 여기까지 왔다. 늘 재미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나이를 먹고, 현실을 알고,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죽음을 너무 많이 봤다. 그때마다 마음이 뚝
뚝 떨어져 나가, 어느 순간 녹슨 철근같은 눈빛으로 산 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흘려 듣는다.
암, 외상, 보더콜리.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를 소리내어 읽어 본다. 그 사이 어디에 나의 길이 있다. 루소든 반더러든 아무튼 우리는 걷는 것이다. 재미있게.

내일 결정한다.

July 11, 2017

이식

누군가의 마지막 숨이 누군가의 새로운 첫 숨이 된다. 비유가 아니라, 실로 그렇다.
기증자의 폐를 적출하기 직전, 폐의 허탈을 막기 위해 인공호흡기로 양압을 가하여 폐가 풍선처럼 공기를 머금으면, 그 순간 기관지를 봉합한 후 절제한다. 의료진은 그 상태를 유지하며 이동하여 수혜자에게 이식하기에, 수혜자가 새 폐를 통해 처음 내쉬는 숨은 실은 기증자가 마지막으로 폐포 깊숙히 간직했던 바로 그 숨인 것이다.